K 이야기

우보연

오월

Mon Apr 30 2007 13:2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오월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스물한 살 나이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는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得了愛情痛苦 득료애정통고 - 얻었도다, 애정의 고통을 失了愛情痛苦 실료애정통고 - 버렸도다, 애정의 고통을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 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 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피천득 ‘오월’ 밝고 맑은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흐르는 듯, 흘러가지 않을 것 같던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K는 반짝이는 신록과 함께 앉아있다. 그리고 뭔가 비어있는 눈망울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비어있다K는 왜 열여덜 살의 감성적인 소녀처럼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걸까?그리고 나는 왜 ‘K 이야기’를 감성적으로 시작하는 것일까?아마도 흐르는 것을 붙잡지 못하는 나의, K의 허전함 때문일 것이다.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꽃만 홀로 꽂혀있는 꽃병을 채울 시원한 물 한 동이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꽃은 점점 말라가고 있는데 말이다.우리는 늘 채우지만, 또 비워진다. 옛 우화속의 밑독 빠진 항아리처럼 늘 채우지만, 금세 빠져버린다. 언제쯤 이 허전함을 채울 수 있을까?자신의 몸으로 밑독을 막은 두꺼비의 희생과 같은 고귀함이 있다면, 채워질 수 있을까?근데. 그것도 아닌 것 같다.그리고 시간은 흐른다. K는 문득 깨닫는다. 시간이 흘러 해가 저물자, 그 비어있던, 자신의 마음같이 비어있던, 그 하늘에 어느새. 문득. 저녁노을이 찾아 왔다는 것을. K는 깨닫는다.노을은 어느새 하늘과 K와 나를 가득 채운다. 그렇다. 시간은 흐른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가고 있고,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그렇게 그렇게 시간이 가고 ‘원숙한 여인’ 같은 유월이 되면, 뭔가 찾아 올 것이다.물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하겠지만, 무엇인가. 정말 어떤 것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흐르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채우고, 비우고, 그리고 또 기다린다. 글 l 우보연 cinew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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