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생 세상만사

신동민

북핵, 산으로 가고 있나, 바다로 가고 있나

Wed Apr 25 2007 15:12: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국가들 간의 정치를 다루는 “국제정치학”에서 가장 강조하는 가치는 “프루던스(prudence)”다. 국제정치학에도 지금 이놈 저놈 갈라져서 싸우는 한국 정치처럼 물론 크게 보아 현실주의와 자유주의라는 다른 사상적 조류가 있지만, 프루던스는 그들의 논의를 꿰뚫는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신중함” 정도 되겠지만, 이는 국제정치학에서 사용되는 용어의 맛깔을 살리지 못한다. 가치나 이데올로기에 휘말리지 말고, 객관적으로 현재 주어진 힘의 배분 상태를 고려하여 전략적인 정책을 수립하고 냉철한 결정을 내리라는 프루던스. 현실주의의 대가라 불리는 키신저가 70년대 초 베트남전 이후 미국의 국력이 저하되는 국면에서, 소련을 봉쇄하고자 이념의 적으로서 수십 년 간 싸워온 중국과 수교관계를 맺은 ‘깜작쇼’를 연출했던 것. 이것이야말로 국제정치학의 프루던스를 보여주는 한 실례인 듯 하다. 북핵, 어디로 가고 있나? 지난 2월 “2.13 합의”조치 발표 이후 금방이라도 해결될 것 같던 북핵 문제가 해결은커녕 방코델타아시아(BDA) 자금 문제에 걸려 합의문 내용 자체도 다루지 못하고 있다. 이미 합의문에서 약속한 북한의 조치조치 이행 시간 마감 시한인 60일, 즉 4월 14일도 넘긴지도 오래다. 북한과 미국은 “2.13 합의문”에는 명시되지 않았지만, 미국이 2006년 9월 북한의 핵실험 이후 BDA에 불법 자금 명목으로 동결했던 자금 2500만 달러를 북한에 돌려주는 것으로 북핵 폐기의 멀고도 험한 길의 첫발을 내디디려 했다. 북한도 자금을 받는 즉시 “2.13 합의”를 시행하겠다는 긍정적 메시지를 던졌었다. 그러나 자금을 동결해제 하는 과정에서부터 미국과 북한의 설왕설래는 오갔다. 미국은 북한 자금을 단순 동결해제 해주는 것을 BDA문제의 해결이라 생각했지만, 북한은 자국 주머니에 돈이 들어오지 않는 이상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갈 수 없다고 맞받아친 것. 북미는 제 3국 금융기관을 통해 자금을 이전하려 하고 있지만 제 3국 은행이 미국으로부터 돈세탁 은행으로 낙인 찍힌 BDA 자금 유치를 꺼려 자금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렇다. 친구간의 사이야 오해가 있으면 술 한잔 먹고 풀면 되지만, 국가간의 관계는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하나의 문제에 대해서도 미국이 생각하는 방식과 북한이 생각하는 방식이 쉬이 다를 수 있으며, 여기에는 지난 수 십 년 간 쌓여온 양국간의 불신이 그 차이를 더욱 점증시키고 있는 것이다. 북핵,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건가? 산으로 가나? 바다로 가나? 2.13 합의, 상당한 모호성 띨 수 있어 문제는 2.13 합의에 포함되지 않은 BDA문제에 대해서도 북미간의 해석이 이렇게 다를진대, 2.13합의문 본문에는, BDA 식의 갈등을 적용해보면, 북미간의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모호한 부분이 더 많다는 것이다. 합의문의 내용에 의하면 북은 핵 폐기 1단계에서 영변 핵시설을 폐쇄, 봉인하고 IAEA 요원을 복귀도록 초청해야 한다 (합의문 2조 1항). 문제는 94년 제네바 합의 때에도 영변 시설이 IAEA의 사찰 대상이 되었으나 모든 시설이 개방되지는 않았듯이, 핵 사찰이 모든 북한의 핵 시설을 점검하기는 쉽지 않다는 점이다. BDA 문제처럼 영변 핵시설의 범위를 두고 북미간의 다른 해석이 오고 갈 수 있다. 2.13합의 4조 전반은 “초기조치 기간 및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모든 핵프로그램에 대한 완전한 신고와 흑연감속로 및 재처리시설을 포함하는 모든 현존하는 핵시설의 불능화를 포함하는 다음 단계 기간”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북핵 폐기 2단계에 해당하는 불능화 단계에서도, 합의는 북의 핵 프로그램 신고를 언급하고 있는데(4조), BDA 문제처럼 신고의 방법과 정도에 대해서도 북미간의 설전이 일어날 수 있다. 2.13 합의가 발표된 이후에도 제기되었었지만, 북핵 폐기의 핵심 사항인 불능화(disablement)의 범위를 두고서도 북미간의 이견이 발생할 수 있다. 미국은 폐기 쪽에 가까운 불능화를 언급하겠지만, 북한은 동결 쪽에 가깝게 이를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결정적으로 지난 94년 제네바 합의가 사실 상 효력을 상실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고농축우라늄(HEU)프로그램이 2.13 합의에 포함되었는지 여부도, 북핵 폐기 과정상 북미의 의견이 갈릴 수 있는 어려운 주제로 남아있다. 1단계 약속시한 60일도 지나가 이미 2.13 조치는 1단계 약속시한인 60일이 지나갔다. 예상하지 못한 BDA 문제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이 말은 뒤집어 생각하면, 또 다른 제2, 제3의 BDA가 발생할 경우, 또 다른 사실상 합의문 위반을 낳아 합의문의 구속력과 가치를 저하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금방이라도 해결될 것 같은 문제가 다시 쉽게 꼬여버리는 것이 바로 외교 현장의 모습이다. 상대방의 의사를 믿고 여기에 의존하는 것은 약속 이행을 보장하지 못한다. 상황이 바뀌면 "내가 언제 그랬었던가"하며 언제든지 태도를 바꿀 수 있는 것이 국제정치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외교적 목표가 북핵 폐기에 있다면, 단순히 “말 많고 탈 많을 것” 같은 합의문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닌 이들이 약속을 이행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나 인과관계를 만드는 것는 것이 필요하다. 약속이나 감상적인 민족주의는 결코 국제정치의 복잡한 문제를 푸는 도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외교의 정석, "프루던스"만이 북핵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것을 수많은 국제정치 사례들은 일깨워주고 있다. 민초 3기 신동민 기자(stooco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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