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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용

CEO 히틀러 v. 처칠

Wed Feb 28 2007 13:57: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CEO 히틀러 v. 처칠 아마 우리 재단 사람들이라면 최소한 이들 두 사람, 히틀러와 처칠이 어떤 사람인지 대략의 프로필은 알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세기의 앙숙이라고 하고, 또 누군가는 숙명의 라이벌이라고 하는 이들 두 사람... 하지만 그에 앞서서 왜 이들이 우리 시대에 의미를 갖는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아직 없었던 것 같다. 옥스퍼드 대학교의 입학시험 과정 중 면접시험에 ‘한 사람이 수백, 수천명을 이끌 수 있는 힘의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스스로 자문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아직은 확실한 답변을 내놓은 적이 없었다. 아니, 필자의 생각으로는 수억년이 지난다고 해도 밝혀지지 않을 것 같다. 이런 연구에서 해답을 구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비교대상인 양자를 두고 그들로부터 귀납적으로 결론을 도출해 내는 것이다. 즉, 사례를 중심으로 거꾸로 돌아가면서 결론을 이끌어내는 방법을 통해 하나의 추상적인 개념화를 이루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근거 하에 히틀러와 처칠에 대한 비교연구는 우리 시대가 필요로 하는 리더십이 어떤 추상적인 틀을 갖추느냐에 대한 해답으로 귀결될 것이다. 아돌프 히틀러. 원래 이름은 아돌프 쉐클그루버. 뭐 진부한 프로필 설명보다는 왜 그가 이성적인 독일을 그토록 미치게 했는지 생각해보자. 위 저서가 가리키는 원인은 개인의 역량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물론 그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아돌프 히틀러만큼 대중연설과 대중선동을 탁월하게 이해한 지도자가 흔치 않았을뿐더러, 그러한 영향으로 지금의 대중연설의 기본이 형성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당연히 맞는 말이다1). 하지만 단순히 그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히틀러는 자기 스스로의 역량은 물론 그 시대가 만들어 낸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후에 마셜플랜의 기본이 되는 사상이기도 하지만, 전쟁에 패하고 왕 마저 잃어버린 독일 국민들은 스스로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원했고, 이를 포장해서 하나의 목표에 돌진하게 해 줄 수 있었던 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히틀러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자신의 능력을 출중하게 발휘하여 리더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에 대비되는 처칠은 어떤 사람인가.? 처칠은 출신성분 등으로만 본다면 정치가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집안의 출신이었다. 물론 어렸을 때의 수많은 사고(?)와 사건(?)들로 인하여 풍파를 겪을 수 밖에 없었지만 결론에 있어서 정치가가 되었다는 점에 그의 출신과 성장이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좀 더 들어가서, 처칠이 리더로 성공한 이유에 대해서까지 위의 이유에 결부지을 수는 없다. 왜냐? 히틀러와 달리 처칠은 정말로! 진실로! 말을 못 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시작하는 위치에 있어서 차이가 있던 이들 두 사람은 권력의 정점에 올라서서 자신의 국가를 전시라는 어려운 상황에서 이끌어 갔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최고로 도달한 점과 달리 그 끝에서는 너무도 다른 길을 가게 된다.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 둘의 리더십 차이와 국가의 제도적 영향이 바로 그 해답이었다. 처칠은 자신이 실패했던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자신을 견제할 수 있는 사람을 참모총장으로 두었던 반면, 히틀러는 자신의 성공을 자신의 공으로 과신하여 임무형 전술개념을 포기하고 자신의 직할로 부대를 두었던 것이 큰 영향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동서고금을 통해 보았을 때 리더 자신만의 생각으로 국가를 운영한 경우의 폐해는 다수의 신하들의 조언 하에서 한 경우보다 그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다. 물론 군왕의 탁월한 리더십이 이를 해결한 경우도 있기는 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던 만큼, 자신만의 판단에 치우치기 보다는 타인의 의견을 듣고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한 것이다. 처칠은 자신의 실수에 비추어 이런 필요성을 깨닫고 자신과 대등한 위치에서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기구를 둘 수 있었던 것이고, 히틀러는 초기의 성공이 오히려 독이 되었음은 물론 끊임없는 의심으로 자신의 제국을 망국의 길로 이끌게 된 것이다. 이에 덧붙여 군부 중심 국가로의 편제로 히틀러의 제3제국이 게슈타포의 감시 하에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었던 반면, 보다 나은 언론의 활로가 보장되고, 다양한 의사의 개진이 가능했던 영국은 국난 속에서도 승리를 자축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역사의 전례가 지금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지는 이런 데이터를 해석하는 자의 손에 걸린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러한 역사적인 실례는 리더십이라는 것이 단순히 자기역량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라가는 것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어떤 흐름을 이끌어내는가에 걸려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본다. 또한 이러한 흐름에서 리더 자신의 사상과 이상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에 대한 연결고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고 본다. 현대에 이르러 리더십의 의미는 너무도 많이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리더를 찾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진정한 리더가 되기는 더더욱 어려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본다. 이런 기회를 통해서 우리 스스로 우리시대가 진정으로 원하는 리더가 어떤 모습인지, 우리가 정말로 필요로 하는 리더는 어떤 리더인지 고찰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 민초5기 한양대 l 조진용 godaez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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