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생 세상만사

웃는 얼굴로 돌아보라!

신동민

웃는 얼굴로 돌아보라! 근 1년 반 만에 이 코너를 다시 맡게 되어서 어깨가 무겁다. 비단 매순간 느끼는 글쓰기의 어려움 때문만이 아니라, 한 살 두 살 더 먹고 그 만큼 세상 경험을 하고 온 만큼, 보다 더 의미 있게 “세상만사”를 논해야 할 것이라는 부담감 때문이다. 지난 호에 쓴 글들을 읽어보니 무엇을 안다고 세사에 왈가왈부 했나 하는 부끄러움이 확 몰려온다. 얼마 전 우연히 유시민 현 보건 복지부 장관의 “서른 살 사내의 자화상”이라는 에세이를 읽었다. 유시민 장관이 30세가 되던 해에 당시 “화려했던” 80년대 역사만큼이나 “뜨거웠던” 자신의 20대 시절을 돌아보며 향후 자신이 어떤 길을 걸어가야겠다는 암시를 던진 글이다. 글 곳곳에는 유시민 장관 특유의 반골기질, 유머 속에 숨어있는 냉소적 태도, 그 차가움을 넘어선 날카로운 비판적 시각이 숨쉬고 있다. 비록 현재 행보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글을 보면 비교적 객관적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시점까지를 바라보았을 때, 그가 왜 정치개혁을 부르짖는 “불온한 자유주의자”가 될 수 밖에 없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너무 바쁜 일상사20대 후반은 아직 안 살아봐서 모르겠으나, 20대 중반은 너무 바쁘다. 20대 초반이 고등학교 입시에서의 해방과 대학의 자유로운 공간, 그리고 남자라면 군대 문제가 가져다주는 일종의 유예기라면, 20대 중반은 사회 진출이라는 과제에 직면하는 냉엄한 현실주의의 공간이다. 그 과정에서 20대 초반 소중히 쌓아온 미래에의 계획과 어떻게 살아가야겠다는 비전은 그 방향을 잃어버리기 일쑤다. 특히 경쟁이 미덕이라는 원하지도 않는데 어느새 확고히 자리 잡힌 최근의 게임의 룰은 20대 중반들의 불안감을 더욱 가중시킨다. 빨리 해결하지 못하면 영원히 유예될 것 같은, 그런 것 말이다.답답한 마음에 우선 찾아가는 곳은 도서관, 고시원이 된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학점의 노예가, 각 종 시험의 주인공이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고시촌의 수업이 끝나고 나면 밀려오는 학생들은 흡사 현실이라는 쓰나미에 휩쓸려 어디로 가야 될 지 방향조차 잊어버린 조난된 개개인을 보는 듯 하다. 거시적 시대 조류를 논했던, 그리고 그런 것조차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20대 초반의 담대함은 어느 덧 경력관리, 자기관리라는 현실적 고려와 시대가 요구하는 적응력에 자리를 내주고 만다. 현실의 냉엄함 앞에, 경쟁의 치열함 앞에 약간의 패배의식, 그리고 개인마다 편차는 있겠지만 조금의 방향성 상실을 겪고 있는 것. 그것이 대다수 20대 중반의 공통적인 키워드가 아닐까 싶다. 답은 자기 자신으로부터?그럼에도 불구하고, 30대 문턱에 “별다른 직업이 없는 자유기고가”이며 “혼자된 어머니에게 매달 용돈을 보내드리지도 못하는 '있으나마나 한' 아들” 유시민은 얄밉게도 이런 혼란을 전혀 내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 나이에도 자기는 잘 살아왔으며 “열심히 노동하는 삶들이 천대받지 아니하고 사람답게 사는 사회, 자기 생각을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말하고 쓸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이런 뻔뻔스러울 만큼의 자기 합리화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지난 시절의 성찰에서 오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다. 물론 지금은 개판치고 있다고 여러 군데서 비판받고 있고 그 정치적 전망이 밝은 것도 아니지만, 서른 살 문턱의 유시민은 시대 조류에 끌려가기보다는 자기가 주체적으로 그 20대의 수많은 국면을 선택해왔으며, 그것이 옳고 비전 있는 방향이었음을 확신한다. 그러기에 꺽어진 육십에 졸업은커녕 대학 2학년에 불과함에도 글 곳곳에 자신 특유의 능글맞은 자신감을 내비칠 수 있는 것이다. 시대를 이끄는 혜안과 창조력은 자기 자신에 대한 강력한 확신에서 나온다. 비록 당장의 선거에서 패배할 것이 명약관화하더라도, 혼자된 어머니에게 서른 살 나이에 용돈을 보내드리지 못하더라도, 지금껏 해온 정치 개혁이 그간의 자신들의 인생사에서 비롯된 정치적 신념에 부합한다면, 평소에 성경 외 듯 말하는 그것이 국민을 위하는 길이었다면 담담히 그 결과를 받아들이면 된다. 다음날 조금은 느리지만 국민들이 그것을 반드시 평가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다. 스스로가 흔들릴 때는 자신의 자화상을 되돌아보자. 자신의 정치적 공과를 확신하지 못해 그 정치적 추궁이 두려워 당을 만든이들이 오히려 앞 다투어 그 당을 버리려는 추태는 보이지 말자. 캐주얼을 입고 국회의원 선서를 했듯, 거시적 시대조류에 강력한 카운터펀치를 한방 날려보자. 도서관에 가도 가는 이유가 명확하다면, 십년 수십 년 후에는 상황에 끌려가기보다는 상황을 선도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될 테니까. 20대 중반의 불안감을 헤쳐나가는 힘은 바로 스스로의 일관성을 지키는 것에 있다. 민초 3기l신동민 stoocom@nate.com

Sat Feb 17 2007 03:58: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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