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이야기

우보연

여유

Thu Feb 22 2007 03:09: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여유 점심시간, K는 내일까지 끝내야하는 기획서 때문에 점심시간도 잊은채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 모두 점심식사를 하러 나간 빈 사무실에 혼자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K의 머릿속은 복잡하다.다음 주가 어머니 생신인데, 내려갈까? 아니야 다음 주에 바이어를 상대로 프리젠테이션이 있는데 그걸 준비하려면 시간이 안 될 것 같아. 선물이라도 보내야 되는데. 근데 선물은 언제 사지? 그리고 어머니한테 전화라도 드려야 되는데 언제 하지.근데 지금 배가 고픈데 밥을 먹으러 갈까? 아니야 기획서 끝내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니까 다 끝내고 먹자. 맞다 오늘까지 전기세를 내야하는데, 어떻하지? 아 그런데 배가 왜 이렇게 고프지? 커피라도 마셔야 겠다.커피 자판기 앞의 K는 무언가에 쫒기듯 커피를 훌훌 들이마시고 있다.그 향도 잊은채, ‘커피’라는 단어에 단골처럼 따라붙는 ‘여유’라는 단어도 잊은채.그때 K의 휴대폰이 울린다. 대학친구 봉수다.K는 시계를 보며 망설이다 전화를 받는다.봉수 : 잘 지냈니?K: 응 나야 뭐 잘 지내고 있지.봉수 : 넌 뭐하느라 전화 한통도 없냐?K : 뭐 사는게 바쁘다보니... 근데 무슨 일 있어?봉수 : 일이 있어야지 전화하냐. K : .......봉수 : 그냥 커피 마시다가 옛날 생각이 나서.K : 옛날 생각?봉수 : 우리 학교 다닐 때 뒷산 벤치에 누워서 낮잠 자고 그랬잖아......K : .........봉수 : 그 때 너무 좋았는데 요즘은 그런 여유를 가지기 힘들더라. 문득 커피 한 잔하면서 그 생각이 나더라구.K : .......... 봉수야 내가 회의에 들어가야해서.... 나중에 시간되면 소주나 한잔하자. 내가 연락할게.봉수 : 그래 나도 회사 들어가봐야한다. 나중에 연락하자. 그리고 여유를 가져 임마.사실 봉수와 전화 한 통화 할 시간은 있었는데, 길어야 10분 정도의 시간인데.아직 못 끝낸 기획서 때문에 서둘러 전화를 끊은 K는 하늘을 바라본다.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랗다. 대학시절, K는 점심을 먹고 난뒤학교 뒷산 벤치에 누워 하늘을 보곤 했다.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흩날리는 테이블 위 커피의 향을 맡으며 바라보는 파아란 하늘은 그의 대학시절에 큰 부분을 차지했었다. 그렇게 파아란 하늘이 그의 바로 앞에 다가와 있을 때면, 학점에 대한 걱정도, 졸업 후의 진로도, 다음날 하숙비도 커피 향과 함께 날아가고는 그저 파아란 하늘만이 그의 모든 것이 되었다.무엇이 K의 커피 향과 파아란 하늘을 잊게 했을까?지금 하늘은 그 때의 하늘과 달라진 것이 없고, 그 때처럼 지금도 커피는 그윽한 향을 내뿜고 있지만, 왜 다른 것일까? 그것은 커피의 향을 느낄 시간이 없어서도, 하늘을 바라볼 시간이 없어서도 아닐 것이다. 아마도 여유가 없어서일 것이다. 늘 우리는 시간에 쫓기고, 사람에 쫓기고, 우리가 만든 물질에 쫓긴다. 나 또한 기사 마감에 쫓기어 이렇게 밤 새워 기사를 쓰고 있지 않은가.우리는 하루를 너무 빨리 살고, 너무 바쁘게 살고 있기에 그냥 마시는 커피에도 그윽한 향기가 있음을 잊었고, 머리 위에 파아란 하늘이 있다는 것도 잊은 것이다.그래 여유를 갖자. 단순한 단어이지만, 잊었던 여유를 갖자. 지금 난 기사를 마감하고, 내일까지 끝내야하는 기획서 때문에 늦은 퇴근을 하고 있을 K에게 달려 갈 것이다. 그리고 밤이어서 파아란 하늘은 아니지만 둥그레한 보름달이 떠있는 하늘을 보며 그윽한 커피 향을 K와 함께 맡고 싶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보름달이 반짝이는 그윽한 커피 향을 우리와 함께 하자. 글l 우보연 cinew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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