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머무는 곳

'인클로저놀이'중의 단상, 소유에 대하여

정상미

'인클로저놀이'중의 단상, 소유에 대하여 사진 속의 아이들은 무엇을 하고 있나? 당신도 한번쯤은 해 보았을 놀이, 땅따먹기다. 큰 원이나 사각형을 그린 뒤 각자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돌맹이를 손에 쥐고 나면 놀이는 시작된다. 돌맹이를 손으로 세 번 튕겨서 자기 집으로 돌아오게 할 때 선으로 그어지는 부분이 바로 자기의 땅이 된다. 물론, 가장 넓은 땅을 차지한 사람이 이기는 건 당연하다. 이제 저런 놀이를 하기에는 나이를 많이 먹어치운 내가 왜 땅따먹기 놀이를 길게 너절거리고 있는지 당신은 궁금할 것이다. 옛 시절이 그리워서? 땅따먹기에서 늘 꼴찌만 했던 것이 한이 돼서? 아님, 당신보고 놀아달라고? 애석하게도 위의 것들이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물론, 지금 당장 놀이터에 뛰어나가 당신과 뛰어 노는 것도 무척이나 즐겁겠지만, 그건 나중을 기약하도록 하자. 저기 아해들이 본다. 어쨌거나 땅따먹기 놀이로 돌아가 보자. 손톱이 빠지도록 돌맹이를 쳐 대서 차지하게 된 자신의 땅에는 그 누구도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 옆 집 민수의 두 발은 물론 그의 돌맹이가 내 땅을 슬쩍 지나치는 것 역시 결단코 안 될 일이다! 이 땅은 온전히 내 것이기 때문에! 온전히 내 소유이기 때문이다! 이 놀이에서 당신은 무엇을 연상하는가? 미안하지만 내 머리 속에는 아리따운 옛 추억보다는 로크의 간교함이나 맥퍼슨의 말들이, 인클로저와 그로 인해 농토의 경작권을 잃고 기아의 규율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근대 초기 영국농민들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바로 배타적 사적소유권의 문제가. 어떤 것을 ‘소유’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오늘날 내가 우리 집 앞마당의 손바닥만 한 땅을 ‘소유’한다는 것은 그것에 대한 점유 및 향유는 물론 그것의 처분 및 양도까지 나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나 이외 사람의 점유 및 향유는 철저히 배제된다. 즉, 옆집 민수는 내가 소유한 땅에 배추를 심어먹거나 화초를 재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이것이 ‘오늘날’의 즉, ‘근대적인 소유형태’라는 것이다. 소유(property)란 본래 사물이 아니라 속성이자 권리를 의미하였으나 17세기에 들어와 ‘사물’이나 ‘배타적인 사적 소유권’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역사가들에 의해 밝혀진 서양 중세의 소유형태만 봐도 지금과 같은 소유 개념이 특정 시기의 산물임을 알 수 있다. 중세의 토지소유는 중층적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즉 특정한 토지에 대하여 법적 소유자인 지배층과 그것의 용익권을 소유하는 농노가 공존했다는 것이다. 중세의 지배층은 ‘땅’이라는 사물에 대한 ‘배타적 독점과 처분의 권한’을 갖는 것이 아니라 법적인 소유와 그 토지에 부속된 사람들로부터 잉여생산물의 일부를 수취할 수 있는 일종의 ‘특권’을 보유하였다. 한편 농민들은 그것의 법적 소유자는 아니지만 자신에게 배정된 토지를 경작하여 조세를 제외한 생산물을 취득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즉 최소한 그/녀는 근대 이후의 노동자처럼 ‘생산수단’으로부터 배제되지는 않았던 것이다. 농민의 토지에 대한 ‘경작권’은 제 아무리 법적 소유자인 영주라고 해도 함부로 강탈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즉, 우리 마을 농민 민수는 내 땅에 와서 배추를 심어먹어도 되는 것이다! 물론, 내게 답례로 배추 두어 포기만 가져다준다면. 자유로운 처분을 의미하지 않는 이러한 소유관하에서는 오늘날과 같은 땅 투기가 불가능함을 말할 필요도 없겠다. 그러나 17세기를 전후로 자본주의 경제가 발전하면서 이러한 소유관에 변화가 요구되었다. 자본주의 경제가 작동되기 위해서는 토지와 노동력의 상품화가 필요했는데 상품화에는 자유로운 유통이 전제된다. 자유로운 유통이 가능하려면 토지와 노동력은 사고 팔 수 있는 ‘사물’로서 존재해야 했으며 그 존재 방식이란 ‘영속적인 귀속’이 아니라 ‘자유로운 처분’이어야 했던 것이다. 따라서 무엇을 ‘소유’한다는 것은 더 이상 그것이 낳는 효과나 산물을 향유하는 권리가 아니라 ‘그 물건 자체를 가지는 것’을 의미했으며 또한 ‘그것을 팔아 그것과 같은 가치를 갖는 다른 물건을 -마찬가지의 방식으로-가질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하게 된 것이다. (물론 그것 역시 얼마든지 새로 팔아넘길 수 있다. 그것을 가지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지 않는다.) 사람들의 삶의 흐름과 얽혀 생활터전으로서 존재했던 토지는 이제 그러한 의미들을 박탈당하고 또 다른 상품인 식량을 생산해내는 하나의 상품으로서만, 토지 그 자체의 사물로서만 존재하게 된다. 토지가 토지 자신으로서만(!)남게 되는 데에는 당연히 그 위에 얽혀있던 사람들을 토지로부터 박탈하는 작업 역시 수반되었다. 법적인 토지 소유권자만이 해당토지에 대한 절대적 소유자가 되었고 여타의 사람들은 더 이상 토지에 간여할 수 없게 되었다. 누군가 무엇을 소유한다는 것은 마땅히 그 외의 사람들을 배제한다는 ‘배타성’을 동시에 의미하게 되었다. 바로 이 과정이 당신과 내가 학창시절 세계사 교과서 한 귀퉁이에서 흘깃 읽고 던져버렸던 ‘인클로저’의 역사인 것이다. 토지에 대한 용익권을 박탈당한 농민들, 즉, 생산수단으로부터 격리된 농민들은 이제 더 이상 농민일 수 없었고, 부랑자가 되어 수용소에 갇히거나 도시의 임금노동자가 되어 자신의 노동을 상품으로 팔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시장경제가 원활히 작동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소유관의 변화가 토지뿐만 아니라 모든 자원과 재화에 적용되어야 했고 이전에는 판매 불가능하던 사물을 통해 누리던 권리들은 시장에서 자유롭게 매매됨으로써 판매가능하며 무제한적인 사물에 대한 권리로 변화하였다. 이런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배타적 사적 소유권’이 주류적 관념으로 자리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소유관의 변화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질 만큼 당연한 것도 자연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적절한 ‘논변’이 필요했다. 근대 주권의 문제와 더불어 이러한 형식의 소유관에 대한 정당화의 역사가 바로 근대 정치의 역사인 것이다. 전자의 문제에 천착했던 것이 홉스라면 그것이 해결된 전제하에 소유권을 정당화하여 근대 절대 주권으로부터 보호하는 일에 매달린 이론가가 로크였다.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소유’의 문제는 언제나 공동체의 중대 사안이었고 이에 대한 정당화 논변이나 비판하는 논변들은 계속 있어왔다. 그리고 어느 입장을 취하든 17세기 이후 자유주의 이론가들은 대부분 소유가 인간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것임을 전제하였다. 당신은 지금의 이 전제를 눈여겨봐주기 바란다. 사회계약론자인 로크에 따르면 소유권은 생명 및 자유에 대한 권리와 더불어 엄연한 ‘자연권’에 속한다. 이는 국가가 등장한 이후에나 소유가 가능하다고 보았던 홉스와는 분명 구별되는 사고다. 로크의 자연상태를 단순히 보지 말길 바란다. 그닥 호락호락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이 때, 소유를 정의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내 것과 네 것을 가르는 기준이 되는 것은 노동이었다. 사람은 자신의 인신을 소유하기 때문에 자신의 인신을 사용한 결과로 얻어진 것은 당연히 그 사람의 것이라는 발상이다. 그러나 이 상태에서 무제한적 소유는 제약이 따르는데 생산물의 부패, 배타적 독점 불가, 타인의 노동 수취 불가가 바로 그것이다. 여기까지는 딱히 윤리적인 문제를 제기할 것이 없어 보인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난데없이 자연상태에 화폐가 등장하면서 가치저장과 소유의 불평등이 가능해진다. 또한 화폐를 매개로 하여 인간은 자신의 소유인 인신을 바탕으로 한 노동을 사고 팔 수 있게 된다. 따라서 그 노동을 통해 만들어진 산물은 그 노동을 구매한 사람의 소유가 된다. 자연 상태에 이미 임금노동관계가 등장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기발하고 창의적인가! 이로써 자신의 생존 수준 이상의 부의 축적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는 17세기 당시 영국의 사회현실이 투영된 자연상태로서 소유의 불평등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근대의 사적소유권은 시장관계와 맞물리면 자연스럽게 경제적 불평등을 야기하기 마련이다. ‘태초에’ 같은 소유를 전제하고 동일 조건하에서 출발한다 해도 모든 것을 시장관계로 유입시킨 것의 필연적 결과로서 빈익빈 부익부는 불가피한 결과이다. 뿐만 아니라 문제는 그러한 식의 지나친 부의 편차는 아름다운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핵심 캐치프레이즈인 ‘기회의 평등’과도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게다가 지나친 불평등은 앞서 강조했던 개인의 사적 소유권을 정당화 시키는 논리, 개인의 생존 보장과도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뭐 맥퍼슨의 논의를 참조하자면 그렇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소유권은 합리성의 지표로서 기능하게 되므로 소유권이 없는 자는 시민사회의 구성원에서 제외된다. 또한 정치공동체의 존립 이유가 바로 재산의 보호에 있다고 명시하였으므로 실상 재산을 가지지 못한 그/녀가(물론 당시에 이런 논의가 행해질 때 ‘그녀’들은 정치공동체와 전혀 무관한 사람들로 치부되는 것이 ‘대세’였음은 주지의 사실. 하지만 ‘대세’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는 걸 당신도 잘 알고 있다.-고 믿는다.) 정치공동체에 참여할 권리는 물론 이유마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소유의 문제가 정치의 문제인 것은, 비단 소유를 기반으로 참정권이 주어지기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을 정당한 소유로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는 국가권력의 문제와 연동된다. 소유권 자체가 타인의 배제와 자신의 전제(專制)를 ‘강제’하는 권리이며 그 강제는 오늘날 최고 권위의 정치공동체인 ‘국가’에서 보장 및 원조해주고 있기 때문에 결국 소유의 문제는 정치공동체의 문제이고 그 구성원들의 합의를 필요로 하는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합의는 결코 로크의 말대로 ‘사람들이 묵시적이고 자발적인 동의에 의해서 잉여생산물의 수취와 화폐에 의한 교환을 인정했고 그 결과 토지를 불균등하고 불평등하게 소유하는 데 합의했다’라는 식으로 얼렁뚱땅 넘어갈 문제가 아닌 것이다. 당신은 죽은 로크의 이야기가 오늘날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내게 물을지 모르겠다. 로크의 이러한 논변은 당시의 자유주의자들에게 흡수되어 실상 오늘날까지도 영미권을 필두로 하는 주류 정치학계에서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으며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의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기반으로 자리 잡고 있다. 현재 자유민주주의 이념의 메카이자 자신은 시장경제를 초월하여 시장경제를 작동시키는 국가, 미국의 중등교육과정에서 학생들은 로크의 『통치론』 특히나 ‘5절 소유권에 대하여’ 부분을 금과옥조처럼 여기고 외우고 있다고 전해진다. 오늘날 ‘절대 선’으로서 추앙받고 있는 자유민주주의는 평화와 문명의 전도사의 얼굴 뒤에 이처럼 사회 경제적 불평등에 입각해 정치적 불평등을 합리화하려는 의도를 감추고 있는 것이다. 당신의 아버지나 나의 어머니, 혹은 당신이 또는 내가 정치인이 아닌 이유는 아니 정치의 곁에 가 닿지 못하고 그저 몇 년에 한 번 투표용지 한 장을 잠시 쥐어보는 것만으로 감사해야하는 이유는 소위 ‘정치’라는 것이 적성에 안 맞아서이기도 하고 정치판이 더러워서이기도 하겠지만 우리가 가진 것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로크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는 합리성이 부족한 인간들이므로! 또한 국가의 일에 간여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므로! 그러나 오늘날, 내가 인터넷으로 FTA를 찾아보는 대신 싸이월드에 접속해 투힛에 집착하는 동안, 당신이 일상에서 정치의 페이지를 스스로 말소시키고 남은 페이지에 침잠해 들어가는 동안, ‘정치’라는 단어가 대선 후보들의 이름 앞에서만 들락날락거리는 동안 로크를, 자유민주주의를, 이 세계의 메커니즘을 겨냥한 이러한 딴죽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나는 궁금해진다. 말 그대로 ‘수요’가 없는 (물론 그 전에 ‘공급’도 없지만.) ‘더 많은 민주주의’를 바라 무엇 하겠는가. 오늘 저녁 식탁에 올릴 국거리로라도 써먹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딴죽들이 모두 흑백사진으로 치부된다고 해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오늘날의 소유형태가 특정한 시기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이제’ 당신은 무엇을 어떻게 소유하겠는가? 현재의 소유 그 이상의 소유를 조심스럽게 상상이라도 해 볼 수 있지 않은가. 당장은 국거리로도 써먹을 수 없는 헛소리라는 건 알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기에는 여전히 목이 마르다. 아이들이 땅따먹기를 하고 있는 놀이터로 돌아가 본다. 혹자는 저 놀이가 농경생활을 주로 하던 우리 조상들의 땅에 대한 열망이 투영된 순수한 놀이라고 전한다. 그러나 저 놀이를 하는 동안 아이들이 인클로저의 배타성 역시 자신 안으로 코드화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억측에서 여전히 나는 자유롭지가 못하다. ※참고문헌 로크, 『통치론』 까치, 1996 맥퍼슨 저, 황경식 외 역, 『홉스와 로크의 사회철학: 소유적 개인주의의 정치이론』, 박영사, 2002 김남두 편역, 『재산권 사상의 흐름』, 1993, 천지 ※사진출처: ‘아이들 ‘땅따먹기’ 현장을 잡다‘, 오마이뉴스, 2006-09-25 의 수록사진 민초6기 서울대 l 정상미 aporia18@naver.com

Mon Feb 26 2007 09: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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