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이야기

어린 참새의 장례식

우보연

어린 참새의 장례식 일요일 오후약간은 시큰둥한 가을 햇살이 흐드러지게 잠을 자고 있는 K의 코끝을 간질인다. 일어나라는 햇살의 계속되는 꼬드김에 K는 수줍게 눈을 뜬다. 부스스한 얼굴로 크게 기지개를 켜고 부엌으로 향한 K는 냉장고 문을 열고, 물을 벌컥벌컥 마신다. 밤새 목이 탔나보다. 갈증을 해소한 K는 냉장고 문을 활짝 열고, 냉장고 여기저기를 뒤적인다. 냉장고 안에는 고향에서 보낸 큰 김치통 말고는, 먹다만 빵부스러기와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 반쯤 남은 물통이 전부이다. 혹시나 다른 것이 있지 않을까 뒤적여 보지만, 비어있기는 K의 위속과 마찬가지이다. 이번에는 부엌 찬장을 열어보지만, 하나 남아있던 라면은 어젯밤에 끊여먹고 없다.K는 잠시 고민한다. 그냥 자장면을 시켜 먹을까. 아니면 라면을 사가지고 올까.귀찮았지만, 어젯밤 끊여먹었던 라면의 구수함이 입가를 감돌았기에, K는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간다. 동네 슈퍼에서 라면을 비롯한 인스턴트식품을 이것저것 사가지고 K는 익숙한 골목길을 걷는다. 오늘도 K는 인스턴트 음식으로 배를 채우려는 모양이다.꾸부정한 자세로 집으로 향하던 K의 눈에 골목 꼬맹이들의 모습이 들어온다. 아이들은 가운데 뭔가를 두고 지네들끼리 다투고 있다. K는 모르는 척, 그들 뒤에 서서 지켜본다.니가 죽였어.아니야. 니가 죽였어. 니가 떨어뜨리지만 않았어도 죽지 않았단 말이야.니가 밀어서 떨어뜨렸단 말이야. 아이들은 죽어있는 어린 참새 한 마리를 가운데 두고 참새를 죽인 책임을 서로 떠넘기고 있었다. K는 참새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서로에게 떠넘기는 그 아이들을 보며 문득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어린 시절, K도 풀밭에서 잡은 청개구리 한 마리를 가지고 놀았었다. K는 어린 자신보다 더 작은 존재가 자신의 힘에 압도당한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재미있었다. 그래서 청개구리에게 이리저리 장난을 쳤었다. 그러다가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듯이 청개구리는 흐물흐물 거리며 움직이지 않게 되었고, K도 두려움에 흐물흐물 눈물을 흘렸다. 그 때 K는 죽음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접했던 것 같다. K는 어떤 죄책감과 두려움에 휩싸여서 청개구리를 땅에 묻어줬다. 물론 어렸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죄책감도 묻혀지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K는 아이들에게 더 다가갔다. 그리고 자신이 다 해결해줄듯 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얘들아 그 참새 땅에 묻어주자.뭔가 대단한 해결책을 제시한 듯 한껏 미소를 머금으며 아이들을 바라보는 K의 기대와는 달리 아이들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우리들도 그렇게 하려고 했어요.헉. 아이들의 반응에 당황한 K는 할 일을 잃은 듯 두 손을 모으고 아이들만 바라본다.이윽고 한 아이가 빈 우유팩을 들고 와서 죽은 참새를 우유팩 안에 넣는다. 예전에 K는 그냥 땅에 묻었었는데, 요즘 아이들은 머리도 잘 돌아간다.죽은 참새를 종이 관에 안치하고 K와 아이들은 한 팀이 되어 어린 참새의 장례식을 치를 양지바른 언덕을 찾아 나섰다. 배고픔도 잊은 채 동심으로 돌아간 그는 아이들과 함께 골목 여기저기를 누비고 다녔다.근데 없다. 양지바른 언덕은커녕 흙바닥도 없다. 정말 골목 여기저기를 이 잡듯이 뒤져보았지만 어느 한 군데도 없다. 온통 시멘트로 덮여진 바닥뿐이다.아이들은 울상이었다.흙바닥도 없는 이 골목에 대한 울상인지, 원래 이 골목에는 흙바닥이 없는데 그것을 찾아 나서자고 한 K에 대한 울상인지 모르겠지만, K 또한 달라진 골목풍경에 기분이 좋지 않다. 왜 여기에 시멘트 바닥이 있을까.흙바닥에 선을 그어서 하는 오징어 놀이, 하늘과 땅 놀이, 땅따먹기 놀이와 땅을 이리저리 파서 하는 구슬치기 놀이 같은 것을 해본 적이 있는가?놀이기구가 흔하지 않던 시절, 우리들에게 흙바닥은 놀이터였고, 장난감이었고, 무등을 태워주는 아버지의 어깨 같은 것이었다. 근데 요즘 아이들은 흙바닥에서 놀지 않는다. 아니 놀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시멘트바닥이 흙바닥을 대신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바닥은 모두 딱딱하고, 회색인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해맑다. 이 바닥이 예전에는 자신들의 놀이터였다는 것도 모른 채, 그들은 오늘도 시멘트 바닥 위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미소 짓고 있다. 어린 참새의 장례식그렇게 K와 아이들은 단단한 바닥에 둘러싸인 골목길에 울상을 지으며, 마음도 단단하게 굳어져갔다. 단단한 종이관 속에 들어있는 죽은 참새는 생을 다하고도 편하지 못하는 걸까.누구를 원망해야하는 걸까.그때 저 앞으로 먼저 뛰어갔던 한 아이가 K와 아이들에게 얼른 와보라고 손짓한다. 아이가 손짓하며 오라고 한 곳은 동네의 작은 교회였다. 그 마당에 화단이 있었다. 정말 눈물나도록 고마웠다. 꽃 몇 송이가 피어 있는 작은 화단이었지만, 죽은 참새를 묻기에는 충분했다. K와 아이들은 엄숙한 의식을 치르듯, 조심스럽게 화단의 흙을 파서 종이관 속의 참새를 묻었다. 흙을 다 덮고 난 뒤 아이들과 K는 한참을 바라보았다. 뭔가 무거운 표정들이다.죄책감을 벗어났다는 홀가분함으로 가벼워져야 하건만, 아이들과 K의 마음은 왜 이렇게 무거운 걸까. 돌아서면서 K는 계속 손에 들고 있는 봉지 속의 인스턴트 식품들이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그러나 아이들은가벼워졌다. 그들은 회색빛 단단한 바닥 위를 깡충깡충 뛰어다니며 밝게 미소 짓고 있다. 단국대 l 우보연 cinewoo@naver.com

Tue Oct 31 2006 03:04: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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