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생 해외통신

대만 유학기 2편~

고경환

대만 유학기 2편~ 다시 기회가 되어 이렇게 1편에 이어 2편을 쓰게 되니 참 감개무량하다. 이 편에서는 내가 어떻게 유학생활을 하였는지에 대해 쓰고자 한다. 2003년 2월. 교환학생으로 선정되어 대만으로 출발하기 전에 학교에서는 교환학생으로 가는 학생 모두를 초청하여 교환학생 오리엔테이션을 하였다. 이 때 오리엔테이션 담당했던 선생님이 침이 마르도록 부탁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그 것은 바로 교환학생으로 가서 제발 공부만 하고 오지 말라는 것이었다. 어떤 학생이 현지에서 거의 친구도 사귀지 않고, 여행도 다니지 않으면서 졸업학점을 채우기 위해 1년에 45학점을 듣고 왔다면서 교환학생이라는 아까운 시간을 책상에만 쏟았다고 너무나도 아쉬워했다. 그렇게 보낼 생각이었다면, 왜 교환학생으로 굳이 해외까지 나가냐고 우리에게 물었다. 나는 그 담당 선생님의 말을 들으면서 바로 맘을 굳게 먹었다, 최소 이수학점만을 이수하기로... 대만으로 떠나기 한 달 전부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더 유익한 교환학생 기간을 보낼까 고민하다, 1년 앞서 교환학생으로 대만에 다녀온 선배에게 연락하였다. 시행착오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유학생활 동안 더 많은 것들을 경험하기 위한 조언을 듣기 위함이었는데, 역시나 그렇게 선배로부터 듣게 된 그의 경험담은 이후에 내 유학생활에 아주 큰 보탬이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는 2월의 찬바람을 뒤로한 채 대만으로 향했다. 대만은 겨울에도 높은 산지에만 겨우 눈발이 날릴 정도로 따뜻한 남국이어서 공항에 도착했을 때, 공항 정원에 꽃들이 활짝 피어 있어서 무척 놀랐던 기억이 난다. 대만의 자매학교에 도착하자 마자, 우리 일행을 기다리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다름아닌 다른 한국 학교에서 교환학생으로 온 사람들이었다. 낯선 타국에서 현지 사정에 밝은 한국 사람들을 만나게 되니 혹시나 하는 생각에 잔뜩 긴장했던 마음이 따뜻한 현지 날씨만큼이나 훈훈하게 바뀌었다. 다행히 그분들의 도움으로 중국어 한 마디 제대로 할 수 없었지만, 기숙사 수속 및 학교 등록 등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처음 대만에 온 후배를 도와 여러 가지 수속을 밟아 주는 것은 한국 학생들에게만 있는 따뜻한 전통이었다. 이렇게 내 대만 유학기는 시작되었다.처음에 나는 다양한 대만 학생들을 만나기 위해 여러 가지 수업을 수강하였다. 학교에서 추천하는 수업 외에도 나는 영어 회화, 골프, 스포츠 댄스와 같은 과목을 신청하여 들었고, 내가 들을 수 없는 과목들은 청강을 하여 여러 전공의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다. 이렇게 사귄 친구들과는 수업이 끝나고 나면, 근교의 박물관이나 관광지를 다니면서 다양한 문화체험도 같이 하였다. 또한 다른 나라 교환학생들과도 친해져, 종종 서로의 음식과 문화를 교류하는 야외 파티를 하기도 하였다. 이런 파티는 한국 유학생들이 대체로 선배로부터 물려받은 조리 기구가 많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일주일에 2~3회 정도는 방과 후에 축구를 좋아하는 몇 명의 한국 학생들과 함께 여러 대학의 축구 동아리를 돌아다니면서 축구 시합을 같이 즐기기도 하였는데, 마음에 맞는 대만 친구, 일본 친구, 한국 친구들과 함께 축구 동호회 대항전에 출전하여 준우승이라는 믿기지 성적을 올리기도 하였다. 한편 연휴와 방학을 이용해 룸메이트와 현지 친구들의 고향집을 방문하여 대만 사람들의 사는 모습, 가족 형태, 가족 의식 등도 체험하였고, 이를 통해 그들의 삶과 문화를 더욱 잘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유학생의 주머니는 국내 보다 더 한정이 되어있기 때문에 좀 더 풍족한 생활을 위해 불법이지만 아르바이트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한 아르바이트는 정말 장사가 잘 되는 한국 음식점에서 설거지와 서빙을 하는 것이었는데, 난 중국어를 잘 못하고, 경험도 없었기 때문에 설거지부터 하게 되었다. 총 3개월 동안 토요일과 일요일에 총 20 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처음 1개월 동안은 식사 시간만 빼고는 하루 종일 접시만 닦았다. 그래도 접시 닦으면서 행복했던 것은 점심과 저녁 식사 때 평소에는 절대 먹을 수 없는 맛있는 한국음식을 풍족히 먹을 수 있다는 점과 방학 때 가고 싶은 곳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여비를 마련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이후 어느 정도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게 된 2학기 때부터는 식당 일은 그만 두고, 한국 관광객의 관광 가이드와 번역 일을 조금씩이나마 할 수 있게 되어 나름대로 윤택한 유학생활을 지속할 수 있었다. 주위에 몇몇 학생들은 이런 다양한 활동 속에서 상대적으로 내면의 외로움과 향수병으로 인한 슬럼프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내가 1년 반을 이런 슬럼프 없이 무난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동문 선배들과도 지속적인 만남과 한인 교회 출석을 통해 한국 사람들과도 정신적 유대감을 끊임없이 지속하여 정신적으로 풍성한 채움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한국 사람들의 정(情)이라는 정서의 중요성을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유학생활을 하면서 항상 마음 속으로 다짐했던 세 가지를 이야기하고 이 글을 마무리 짓고 싶다.첫째, 절대로 언어가 늘지 않는다고 서둘지 않는다. 하지만 꾸준히 끝까지 노력한다.둘째, 놀 수 있을 때 논다. 하지만 내 본분은 망각하지 않는다.셋째, 처음 현지에 발을 디딜 때 마음가짐처럼 사람들을 만나면 항상 내가 먼저 다가간다. 이런 마음가짐을 끝까지 유지하였기 때문에 나름대로 언어 실력 향상과 다양한 현지 문화체험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었다고 감히 고백한다.이상 내가 유학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두서 없이 썼다. 나는 유학생활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이 나중에 해외에서 유학생활을 하게 될 때, 내 경험들이 긍정적인 기준이 되든지, 부정적인 기준이 되든지 간에 작은 보탬이 되면 좋겠다. 참고로 내 교환학생 성적이 그리 나쁜 편은 아니었다는 것을 덧붙이고 싶다. 경희대한방시스템공학졸업생 l박태환 icandoinlord@paran.com

Tue Aug 29 2006 14:35: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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