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생 해외통신

고경환

벌써 1년 in NSU

Thu Apr 20 2006 14:26: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벌써 1년 in NSU ?법대생이 왜 교환학생을 가? 교환학생이 선발되고 나서 제일 많이 들은 말이다. 글쎄.. 객관적인 시각으로 봐서도 크게 환영받지 못한 선택을 한 것 같기는 하다. 대부분의 법대생은 2학년 2학기, 늦어도 3학년 1학기부터는 본격적으로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단계에 있으니, 3학년 2학기에 교환학생을 가는 나는 일반적인 관점으로 보면 한참 궤도에서 일탈하는 길을 걸어가고 있는 상태에 있는 셈이다. 그러나.. 질문을 한번 뒤집어 생각해보자. ‘법’대생이라고해서 교환학생 못가는 ‘법’있어??? ?새로운 생활에의 설레임 그리고 좌절 24시간의 비행을 거쳐 도착한 미국.. 정확히, Aberdeen 은 황량했다. 지하철은 고사하고, 기차나 버스도 없고 도시전체에 택시가 3대이니, 깡촌중의 깡촌을 골라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다. 다행히도 학교 관계자 분들께서 미리 픽업해주려고 나오셔서 따뜻하게 맞아주셨기에, 커다란 이민가방을 들고 학교로 순조롭게 향할 수 있었다. 기숙사에 짐을 풀고 숨돌릴 사이도 없이 학기는 시작되었다. 영어시간외에는 영어를 본적도 없고, 영어교재로 공부한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전형적 법대생이었던 나는 모든 수업을 영어로 들어야 한다는 그 사실 자체가 스트레스 였다. 게다가 왜 그렇게 영어가 안 들리던지.. 귀머거리, 벙어리가 된 기분이었다. 강의중에 교수님의 농담은 고사하고 강의 내용자체를 이해하는 데도 문제가 있어서 수업이 끝난뒤 항상 교수님과 면담하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Turning point ? Marching band 그렇게 2주를 지내다가, 같이 교환학생으로 간 친구의 제안에 의해서 Marching band에 들게 되었다. 물론 악기라고는 초등학교때 불어본 리코더, 어렸을 때 배운 피아노 정도만 다룰 줄 아는 실력이었지만, 열정만 가지고 오라는 교수님의 말씀에 감복하여 불쑥 지원해버렸다. 하지만 그 수업은 음악전공자들이 주로 듣는 것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음악초보자인 내가 따라가기에는 무척이나 벅찬 수업이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오후 1시간 30분씩 무거운 색소폰을 목에 매단 채 연주를 하면서 행진을 한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한번은 비가 많이 오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이었는데 그날도 어김없이 운동장에서 행진연습을 하는 것이었다. 다음날 나는 심한 감기몸살로 몸져 눕고 말았다. 하지만 그 날이후로 영어 못한다고, 악기 못 분다고 무시하던 외국아이들의 시선이 달라진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먼저 다가와서 안부를 묻고, 어려운 점은 없는지 도와줄 것은 없는지.. 갑작스레 달라진 그들의 태도에 적잖이 당황했지만, 나를 그들 그룹의 일부로써 받아들여줘서 기분은 좋았다. 1시간 30분의 행진이 끝나면 우리는 항상 함께 모여서 학교 교호를 외쳤다. 사실 고려대의 교호도 기억을 잘 못하는데, 어떻게 교환교의 교호를 외우냐고 반문한다면 할말은 없다. 하지만 매일매일 한학기동안 목이 터져라고 외치면 외우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입에서 나오게 되더라.“We are Northern, we are Northern, WE ARE NORTHERN!” ?I’m an individual Korean ambassador! 한국에 있을 때는 항상 ‘나’가 중심이었다. 국가가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게 사무치게 느껴지지는 않았었다. 막상 바깥 세상에 나오고 보니, 외국인들은 나를 통해 인간 ‘박선하’를 보기도 하지만 ‘한국인’임을 먼저 인식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이 나를 처음 만날때 묻는 질문은 what’s your name? 이 아니라 where are you from? 이었다. 한국에 관심있는 외국인들은 한국문화, 한국어 등에 대해 이것저것 묻기도 했지만, 영어실력도 실력이거니와 이 방면에 문외한이었던 나는 제대로 대답해 줄 수 없었다. 속상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비록 나는 개인자격으로 외국에 나와있기는 하지만 한국대표이구나.. 그리고 한국인임을 잊어서는 않되겠구나. 그래서 한국문화를 알려주려 노력하고 고심하다가 외국인 친구들을 초대해서 불고기, 미역국, 라면 등 한국 음식을 같이 해먹으면서 한국에 대해 조심스레 알리기 시작했다. 한국은 너희가 알고 있는 중국이나 일본의 한 부분이 아니라, 엄연히 독창적이고 색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는 독립국임을 설파해나갔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한국에 대해서 들어본 적도 없고 본 적도 없다는 데에 적잖이 놀랐다. 하지만 음식교류를 통해서 그들이 한국에 대해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에는 자신한다. 외국에 나오면 다 애국자가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당시에는 ‘설마, 그럴 리가’ 하고 넘어갔지만, 외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생활하고 있는 지금은 전적으로 동감한다. 개인으로서의 나도 소중하지만, 한국인으로서의 나도 외국인들의 시각에서는 나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한국인으로 태어난 데 대해서 후회한 적이 있냐고 묻는 다면, 절대 없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이 강대국이 아니기에, 좀 더 여러사람에게 우리를 알릴 소중할 기회를 가진데 대해서 감사한다. 그리고 교환학생으로서 인생에서 가장 값진 경험을 할 수 있게 도와주신 재단에 대해서도 감사드리는 바이다. 민초4기 고려대 박선하 민초2기 세종대l 고경환 kotor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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