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이야기

난 알지 못한다

우보연

난 알지 못한다 K의 두 번째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할까? 며칠동안 이 명제가 나의 주요한 숙제였다. 잘 풀리지 않았다. 방학숙제를 하나도 하지 않은 아이가 개학날이 다가오듯이 그렇게 기사 마감일도 다가왔다. 그러다가 문득... 아니 정말 우연히 길을 걷다가 벗꽃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K의 두 번째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나 난 알지 못하는 이야기이다. 그저 얼핏 내 가슴이 본 이야기 일뿐이다.1999년 12월 31일 어느 바닷가겨울바람이 사납게 부는 조용한 시골바닷가, 인적이 뜸한 그곳에 K는 홀로 앉아있다. 철썩철석 부서지는 파도들이 흰 거품을 물고 조금씩 K에게 다가왔지만, K는 뭔가 체념한 표정으로 바다만을 바라볼 뿐이다.왜 그가 여기에 있는 것일까?1999년 가을, K는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에 복학했다. 2년 2개월의 군대생활동안 억눌려 있던 그의 자유의지는 캠퍼스에서 자유롭게 날개를 폈다. 반가운 학교 친구들과 밥도 먹고, 공강 시간에 늘 찾았던 음악관 옆 벤치에 누워 음악관에서 흘러나오는 피아노 소리와 함께 잠을 청하기도 했다. 그동안 새로 들어온 학교 후배들에게 학교 안 잔디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며 선배로서의 객기도 부려보았다. 정말 즐거운 날들이었다.그러나 그의 마음 한 켠은 불안했다. 왜냐구? 취직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아니다. 아직 그는 대학시절의 반도 보내지 않았다. 그렇다면 생활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그것도 아니다. 물론 고향에서 보내주는 부모님의 용돈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지만 그런 것에 연연할 K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 불안감인가? 그건.... 그건 말이다...1999년 12월 31일의 해가 지고 2000년 1월 1일의 해가 뜨지 않을거라는 불안감이다.즉 K는 세기말의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다. 어려서부터 노스머시기 할아버지의 책을 탐독했던 그는 그의 예언을 진리로 받아들였고, 그는 1999년 12월 31일이 세상의 마지막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그래서 그는 바닷가에 있는 것이다. 세상의 마지막 날을 시끄럽게 그의 발을 간질이고 있는 파도와 함께 보내기 위해서 말이다. 세기말을 예상한 것인지 해돋이로 떠들썩할 바닷가에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바닷가 상점들도 모두 문을 닫은 채였다. 파도를 바라보며 K는 내일은 어떤 일이 그에게 벌어질지 생각해 본다. 지옥으로 떨어질지. 하나님과 함께 천국에서 춤을 출 것인지. 그도 아니면 우주를 떠도는 귀신이 될 것인지. 그렇게 노을과 함께 부딪히는 파도를 바라보며 상념에 젖어 있던 K의 시야에 한 여인이 들어왔다. 그녀는 흰 거품을 물고 사납게 부서지는 파도에 다리를 넣고 파도가 시작되는 곳으로 점점 다가가고 있었다. K는 그녀가 불안해 보였다. K는 그녀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무작정 그녀를 파도 속에서 끄집어내었다.‘왜 스스로 죽으려 하느냐’며 그녀를 말렸다. 그녀는 오히려 K를 사납게 쏘아보며 ‘내버려 둬’ 라고 말한다. 그리고 ‘어차피 내일이면 다 끝날거’ 라는 말도 덧붙였다. K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노을과 함께 붉게 물들어 있는 그녀의 이마... 귀엽게 주근깨가 나있는 그녀의 볼에 흘러내리는 그녀의 눈물...그렇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K는 가만히 그녀의 눈물을 안았다. 철썩철썩 부서지는 파도와 함께 그녀를 안았다.K는 그녀와 함께 마지막 날을 보내기로 했다. 그녀의 이름은 J. 그녀 또한 K와 함께 세상의 마지막 날을 보내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그렇게 K와 J는 바닷가에서 서로를 꼭 안고서는 세상의 마지막 날의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러나... 모두들 알고 있듯이 세상의 마지막 날은 오지 않았다. 또 다시 태양은 떠올랐던 것이다.다음날 아침 간밤의 추위에 벌벌 떨면서 자던 K와 J는 아침 햇살에 눈을 떴다. 그들의 눈앞에 뜬 태양을 보며 이건 아마 꿈 일거라며 J의 볼을 꼬집어보는 K.‘아얏’ 하는 J의 비명소리. J도 K의 볼을 꼬집어본다. 역시 들리는 ‘아얏’ 소리.벙 찐 표정의 두 사람. 두 사람 위로 떠올라 있는 붉은 태양. 철썩철썩 끊임없이 부서지며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파도들.K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운명이라고... 하늘이 내게 주신 인연이라고... 그렇게 두 사람의 사랑은 시작되었다. 세상의 마지막 날! 운명같이 만난 그들! 세상의 그 어떤 사랑도 그들처럼 극적일 수 있을까? 2001년 가을 어느 극장 안.K는 운다. 봇물이 터지듯 끊임없이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나온다. 그가 왜 우는지. 왜 여기에 있는지. 그리고 왜 혼자 있는지. 난알지 못한다. 그저 그가 보는 영화 속의 남자 주인공의 대사만을 들었을 뿐.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아무래도 J와 헤어진 듯하다. 왜 헤어진 것인지. 언제 헤어진 것인지. 그리고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역시 난 알지 못한다. 그저 남자인 내가 보기에도 부끄러울 정도로 울고 있는 K의 뒷모습만이 보일뿐이다.2003년 12월 31일 어느 바닷가.K는 바닷가에 앉아 있다. 4년 전의 바로 그 바닷가이다.4년 전과는 모든 것이 달라진 것 같다. 일출을 보러온 사람들로 붐비는 바닷가 풍경도 달라져있고, K의 옷차림 또한 양복차림으로 달라져 있다.철썩철썩 부서지는 파도 소리는 여전히 똑같았지만, 살아있음을 느꼈던 4년 전과는 다르게 K는 그 파도가 울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난 그의 뒤에서 그를 지켜본다. 혹시나 그가 나쁜 마음을 품지나 않을까 해서 말이다. 그만큼 그의 뒷모습은 서글펐다. 난 여전히 알지 못한다. 지금 그가 누구를 떠올리고 있는지...2006년 어느 봄날. 회사를 마친 K는 곧장 일어학원으로 향한다. 저번 호에 소개했던 바로 그 일어학원이다. 일어학원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언제나 가볍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즐거움 때문에 그런 것인지. 아니면 어여뿐 일어강사 때문인지. 역시 난 알지 못한다.그저 흐드러지게 핀 벚꽃과 더불어 일어학원으로 향하는 가벼운 그의 발걸음만을 지켜볼 뿐이다. 민초 4기 단국대 l 우보연 cinewoo@hanmail.net

Tue Apr 25 2006 18:45: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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