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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혁명가의 추억 되돌리기

문경연

노혁명가의 추억 되돌리기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자신의 생애에 대한 신념을 갖는다. 이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아정체성의 확립에서부터 시작된다. 가장 쉬운 듯 하면서도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정체성의 확립은 자신의 ‘사상’을 정립하기 시작하면서 조금은 그 반경을 줄여나갈 수 있다. 내가 과거에 어떤 위치에 서 있었으며, 현재는 어떤 위치에 있고, 미래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확고한 개인 신념의 토대 위에서 더욱 굳건해진다. 역사의 상호작용을 말한 E.H.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고 말했다. 개인의 역사도, 더 나아가서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의 역사도 다르지 않다. 정체성의 확립은 과거, 현재, 미래의 내 모습을 투영하는 거울이 되는 것이다. 또한 개인의 신념은 살아가면서 조금씩 변할 수 있다. 철학자 칼 포퍼는 “젊어서 공산주의자가 아닌 사람은 바보다. 하지만 늙어서도 공산주의자인 사람은 더욱 바보다”라고 말했다. 이는 한 개인의 신념이나 사상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변화를 겪을 수 있음을 시사하는 말이다. 제 아무리 신념이 강한 사람이라도 변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항상 자신의 신념에 대해서 점검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념의 시대였던 1900년대 초반에는 이러한 개인의 신념이 자신의 생애를 결정했다. 어떤 ‘사상’을 확립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생애는 천양지차로 전개됐다. 시간적 공간적 변화에 따라 자신의 신념은 다수의 입장에 속하기도 하고 소수의 입장에 속하기도 했다. 3억 이상의 노동자들이 존재하고 있는 나라, 소련과 동구 유럽이 사회주의의 끈을 놓았을 때에도 자본주의의 물결이 몰아치는 현재에도 사회주의의 끈을 놓지 않는 나라 중국 역시 1900년대 초반에 이러한 이념의 시대가 어김없이 찾아왔다. 이념의 시대를 살았던 중국 혁명가들의 이야기는 통상 ‘다수’의 입장을 피력할 때가 많다. 개인적 신념에 따랐지만 운명의 장난으로 ‘소수’가 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베일 속에 가려져 있다. 역사는 강자의 입장에서 쓰여지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스탈린과의 정쟁에서 패배자로 사라진 트로츠키가 세계사에서 단 몇 줄밖에 기록되지 않은 것처럼 그를 따르던 사람들도 그의 패배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갔다. 중국에서도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1900년대 초반 그들도 그들 나름의 신념을 가지고 열심히 활동했다. 그러나 역사에서 강자는 언제나 하나다. 소련이 스탈린의 편을 들었던 것처럼, 중국은 모택동의 편을 들었다. 중국의 트로츠키 주의자들 역시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갔다. 트로츠키 주의자 왕범서의 『회상- 나의 중국혁명』(새물결, 2005)은 중국 트로츠키 주의자들의 신념과 사상, 활동을 되짚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 있는 책이다. 현재 우리는 민주정치체제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 이념이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 이념보다 더 익숙하고 스탈린의 이념이 트로츠키의 이념보다 더 익숙해 이 책을 읽기에 어려운 점이 없지 않지만, 소수자의 눈에서 중국혁명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신선하다. ‘회상’은 자전적이고 생동감있는 문체로 쓰여져 있으며,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개인의 일대기라기 보다는 1920년대~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까지 중국혁명을 몸소 겪었던 개인의 회상으로 구성돼 있다. 되도록이면 개인의 경험을 객관적으로 서술함으로써 독자에게 중국혁명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회상’은 5.4운동과 5.30운동, 2년간의 대학생활, 한구에서 모스크바로, 동방대학, 모스크바에서 보낸 2년, 귀국 뒤의 공작, 4파에서 통일로, 감옥에 가다, ‘투쟁’ 창간, 항전 초기의 진독수, 태평양전쟁과 조직의 재분열, 전쟁과 혁명의 세월, 적막 속의 사색 등 저자가 조국을 어떻게 생각했고, 어떻게 변화해야겠다고 여겼으며 그 수단이었던 그의 신념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에 대해 객관적으로 서술한다. 뿐만 아니라 중국 트로츠키주의 운동과 중국 혁명의 관계 상에서 자신의 경험을 서술하기 때문에 우리는 중국 혁명의 새로운 사실과 관점들을 접할 수 있다. 저자는 ‘회상’을 저술함으로써 스탈린의 관료주의와 꿍꿍이 때문에 중국혁명이 실패했다고 믿고 그 대안을 자신을 위시한 트로츠키주의자들은 트로츠키주의에서 찾았다는 것을 피력하고 있다. 새로운 중국을 위해 그가 선택했던 최선책은 트로츠키주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책의 뒷부분에서 트로츠키주의자로서 그가 범한 오류에 대해서도 시인함으로써 아집에 휩싸이지 않은 진정한 ‘혁명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핍박받는 노동자들이 주인이 되어 이끄는 새로운 중국을 만들기 위해 트로츠키주의적 시각으로 중국혁명을 판단했고 잘못된 점을 비판하려 했다. 그가 그의 생애를 통해서 이룩하려고 했던 점은 바로 노동자정권을 만들어내고 유지함으로써 진정으로 공 농의 이익을 도모하고 나아가 인류를 행복하게 하는 것, 진정한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중국 혁명에서 우리는 흔히 장개석, 모택동, 주은래 등을 떠올리기 쉽다. 물론 이들이 가장 중국 혁명에서 중요한 인물인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중국 혁명에 있어서 이들은 살아남았지만 많은 혁명가들이 그들의 사상과 이념을 위해 피를 흘렸고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은 그 피의 산물이다. 자서전의 형식을 띈 노혁명가의 정치 비평은 이러한 혼란스러웠던 혁명의 시대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여러 혁명가들의 자취를 알려준다. 그동안 단적으로 제1차 국공합작, 국민당과 공산당의 대결, 제2차 국공합작, 항일전쟁, 중국공산당의 승리로 알고 있었던 중국 현대사에 대해 신선한 화두를 던져주는 책이다. 저자는 진정한 혁명가는 백절불굴의 강인함을 필요로 하며, 자신의 사업에 대한 무한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진정한 혁명가의 믿음이 마땅히 사실에 대한 분명한 인식 위에, 그리고 승리와 실패에 대한 냉정한 이해 위에 세워져야 한다고 덧붙인다. 왕왕, 혁명가들은 자신의 믿음에만 빠져 타인의 승리를 보려고 하지 않으며,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맹목적으로 자신의 믿음을 감싼 나머지, 타인이 승리했다는 사실을 실패라고 말하고 자신의 실패를 승리로 여기게 된다면, 그것은 혁명가가 피해가야 할 아큐정신이다. 그는 진정한 혁명가였다. “화란 복이 기대는 바이고, 복이란 화가 엎드려 있는 바이다”라는 노자의 말처럼 그는 스탈린주의의 성공과 트로츠키주의의 실패를 정확히 인식했다. 실패를 통해 정확히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더 나은 성공의 길을 꾀할 때 진정한 혁명이 이뤄지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전화위복’이다. 그는 트로츠키주의자라고 해서 트로츠키주의만을 맹신하지는 않았다. 실패로 말미암아 그동안 보지 못하던 것들을 다시 한 번 살피고 이를 기록했다. 그러나 ‘더 나은 성공의 길’로는 나가지 못했다. 그 자신이 외국으로 추방당했고, 뜻을 같이 하던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저 세상으로 갔다. 아마도 그는 ‘전화위복’의 방법을 책을 통해 실현하려고 했던 것 같다. 회고록을 작성함으로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소수’혁명가들의 삶과 중국 혁명을 다시 살피도록 만드는 것. 뿐만 아니라 ‘중국트로츠키주의’를 수면 위로 내 놓는 일. 이것이야말로 지금은 고인이 되 버린 노혁명가의 숙원이었을 것이다. 저자는 트로츠키의 말을 인용해 독자들에게 화두를 던진다. “울지 말라, 웃지 마라, 다만 이해하라” 스피노자의 이 말은 사상의 대립 때문에 끝없이 피를 흘려야 했던 스탈린과 트로츠키, 중국공산당과 국민당, 중국트로츠키주의자들에게 모두 필요한 말이 아닐까 싶다. 서로가 서로를 조금씩만 이해했다면 아마도 피의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민초 4기 이화여대l 문경연 mky21@naver.com

Mon Feb 20 2006 14:13: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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